
- 평점
- 6.5 (2022.01.01 개봉)
- 감독
- 연상호
- 출연
- 강수연, 김현주, 류경수, 이동희, 한우열, 엄지원, 윤기창, 이가경, 신민재, 박충환, 김선혁, 이현균, 박소이, 전정일, 안지안
언제부터인가 국내 대중가요가 대부분 어디선가 들어본것만 같은 음악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마침 오늘도 유튜브 알고리즘이 인도한 ‘아이유 표절 47곡 논란’이란 동영상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그것이 표절이던지, 레퍼런스던지, 오마주던지, 클리셰던지 어찌됐던 논란이 있음에도 시대에 따른 창작에 대한 공급자와 소비자의 인식의 변화는 분명해 보인다.(그러고 보면 표절이라는 이유로 가수활동에 치명타를 입었던 이효리같은 예전의 가수들은 시대적으로 상대적으로 좀 억울한 부분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게 음악과 영화는 느낌이 또 다르다.
어디서 들었던것같은 노래를 3분간 듣는것과, 어디서 본것같은 영화를 100분간 보는건 그 피로감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한계와 기술의 완성이 맞닿은 지점은 이미 헐리웃이 수십년전에 넘어섰고, 원하는데로 기호에 맞게 그 상품을 소비할수 있는 자유국가에서 태어난 우리 국민들은 수십년간 그 즐거움을 기꺼이 소비했기에 헐리웃과 제패니메이션에 의해 이미 누적된 SF(특히 디스토피아)부분의 장르적 학습은 AI 를 능가할 정도다.
그런데 그걸 짜집어 재탕하는것도 모자라 어떤 발칙함도 없이 개연성마저 누락시킨 스토리와 캐릭터로 억지 감정을 끄집어내는 영화 ‘정이’는 뭐랄까…
미래를 배경으로 했지만 수준은 오히려 과거로 돌아간 역설을 보여준것 같다.
어쩌면 이게 킬포일수 있다.
모든걸 AI 에 맡긴 미래의 인간은 오히려 퇴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이건 소름돋는 리얼리티인가?

이미 헐리웃 덕에 CGI의 기술적인 부분이나 액션 시퀀스의 맥시멈이 학습된 관객들에게 뭔가 신선한 장면을 선사하긴 쉽지 않을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미친 영상미를 보여주는 영화가 없다는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영화시장 규모와 제작비 측면을 고려했을때 국내 SF영화에서 기존에 볼수 없었던 새로운 기술적 진보나 영상미를 보여주긴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그 어떻게 보면 식상함으로 다가올수도 있는 기술적 평준화가 한국 영화의 세계화를 더 가속화시킬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스토리와 캐릭터 연기력등 그 외의 것들은 충분히 경쟁이 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한가지 확인한것은 비록 기존 헐리웃의 짜집기 모방의 형태이긴 하지만 이제 국내 SF영화의 기술과 연출의 디테일이 어색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영화적인 학습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젠 많은 부분에서 SF에서 F를 빼도 될만큼 영화속 상황이 현실에 반영되거나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것이 거의 확실한 현상중에 하나가 바로 인공지능 로봇의 시대이기 때문에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본 이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젠 SF영화를 보면서 어떤 미래적인 기술적 상상력을 기대하기보다는 예술가인 감독의 입장에서 기술의 특이점을 어떻게 해석할까 하는 궁금증이 더 컸다.
영화 ‘정이’가 스토리와 캐릭터부분에서 많은 아쉬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점은 감독이 윤서현 박사( 故강수연)를 통해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첫째로는 인공지능을 생명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것도 뭐 딱히 새로운 시각은 아니지만 이제 인공지능에 대한 담론이 예술쪽에서는 기계에서 서서히(혹은 빠르게) 생명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에선 그 의미를 극대화 하기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줄수 있는 깊은 감정을 공유하는 존재로 그린것이 좀 무리수 이긴 했지만
과거나 현재로 봤을때 대부분 예술가의 영감이 먼저고 그 뒤에 그것을 현실화 하는 기술이 따라왔듯이 이 또한 또 곧 기술과 현상이 따라올 것이다.
”왠지 나같지가 않아.“
-크로노이드기업 회장-
둘째는 자아에 대한 인식에서 육체를 배제하고 있다는것이다.
영화 ‘정이’는 로봇 회사의 회장이 자신의 뇌를 복제해 자신의 젊은시절 모습으로 만든 몸에 이식했음에도 그것이 자신일 수 없다는 영화 초기인식에서
주인공이 육체(형태)는 버려두고 복제된 뇌(정신)가 삽입된 형체가 없다시피 한 기계를 완전한 엄마로 받아들이는 과정까지 나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이처럼 기억이 누군가를 규정짓는 정체성의 모든것이라는 시선에 공감이 되기도 하는것은
인간도 애기때부터 노인이 될때까지의 외형이 거의 다른모습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반면 빙의와 같은 방식으로 다른기억을 가지게 되면 같은 모습을 하더라도 다른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런점으로 봤을때 인공지능 자아에 대한 이질감은 남아있어도 어색함은 금방 사라질 것이다. 최근 chatGPT 3.5 라는 인공지능 챗봇이 등장해 세계와 학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는 아무런 형태도 없다.
아마도 올 해 출시될 4.0 버전은 학습량에서 3.5의 1,000배가 늘어난 100조개의 학습량이 될것이라고 한다.
1960년대 초창기 컴퓨터에 대해선 그야말로 최소한의 대답만 할 수 있던 컴퓨터를 가지고도 쉽게 그것에 감정을 이입하고 생명으로 인식했다는 실험이야기를 본적이 있는데, 이제 나의 의도와 감정까지 파악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그런점에서 너무 과장되거나 신파처럼 보이긴 해도 이 영화에서 윤서현 박사가 인공지능을 대한 태도는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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