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점
- 5.1 (2023.01.01 개봉)
- 감독
- 변성현
- 출연
- 전도연, 설경구, 김시아, 이솜, 구교환, 이연
“씨부럴년..”
<영화 길복순>
피가 낭자하던 살육씬이 한창인 러닝타임 50분경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눈을 뜨니 어느새 2시간을 지나간 시점에 라스트 결투씬이 펼쳐지고 있었다.
대략 1시간의 꿀잠 후에 끝까지 보고 난 느낌을 한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꿀잠은 짧고 영화는 길다’ 혹은 ‘꿀잠과 꿀잼은 한 끗 차이’ 정도가 될 것이다.
요즘 상업 영화는 뭔가 자본의 원리에 역행하는 것 같다. 대중의 니즈에 부합해 수익을 내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기보다 수익은 뒤로하고 페미니즘이나 레즈비언 게이 같은 성평등이나 성소주자의 권리를 옹호하는등의 어떤 특정 어젠다를 억지로 주입하기 위해 무지하게 애쓰는 흔적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상업영화가 가져야 할 재미를 반감시키면서까지 러닝타임을 할애하고 거기에 기꺼이 돈까지 퍼붓는걸 보면서 부담 없이 상영도중 눈이 감기는 현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물론 영화는 많은 부분 관객과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진행된다.
‘실력 좋은 여성 암살자’는 영화 초반 야쿠자 보스 오다 신이치로(황정민)가 씨부럴년을 외치며 죽기 전에 평가한 길복순(전도연)의 프로필이다.
이로써 관객은 165cm 남짓의 키에 45kg이나 될까 한 가냘픈 40대의 중년 여성을 최고의 검술을 가진 야쿠자 두목은 물론 다수의 남성을 한꺼번에 살해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최고의 ‘실력 좋은 여성 킬러’로 받아들여야만 하고 그래야만 끝까지 감상이 가능하다.
왜 이런 무리수를 감행하는 것일까?
캐릭터는 그야말로 엉망이다. 피지컬은 둘째치고 딸 앞에서는 누가 봐도 불과 한 달 전 전도연이 주연을 맡아 인기를 얻은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수험생 엄마 역할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한 정감 가는 엄마가 딸만 없으면 별다른 빙의 없이도 살인기계로 변모하는 걸 암묵적인 합의만으로 버텨내는건 쉽지 않은 감상법이다.
또 근래 한국 영화의 특징 중 하나가 극단적으로 말하면 심한 짜깁기라고 해도 이해가 될만한 과한 오마주인 것 같다.
이 영화가 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인지 존 윅 이너지 킬 빌인지 분간이 안 간다.
화려한 액션과 잔인한 살육에 아무런 긴장감도 없다. 그저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의 연속일 뿐이다.
뭔가 하드보일한 느낌에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추구한 것 같은데 스토리는 성평등 성소수자에 맞춰놓으니 이도 저도 아니다.
그냥 페미니즘이나 LGBTQ.. 어젠다만 집어넣으면 넷플릭스로부터 제작비 타먹기가 쉬운 것일까?
그런 시나리오는 최근 출시된 AI 쳇GPT가 하루에도 몇 편씩 써낼 것 같은데 생성형 인공지능이 대체할 직업 중 하나가 시나리오 작가라고 했던 언론기사는 과장이 아닌 것 같다.
최근 한국 영화 관객 수가 역대 가장 낮은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하는데 다 이유가 있다. 재미나 스토리는 뒷전이고 반일이니 페미니즘이니 사회주의니 성평등이니 성소수자니 자꾸만 무슨 사상을 강제로 주입시키는 교육자료를 만들어내니 관객들이 외면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
투자를 받기 위해 너무 타협한 나머지 한국 영화가 시각적으로 점점 진보된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걸맞은 고유한 작가정신을 발견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상업영화가 정점을 찍지도 못한 체 퇴보하는 느낌을 받는 게 영화 ‘길복순’ 이후로도 계속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이 예감이 혹시 한국 영화계에 카산드라의 저주가 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제 한국 영화를 보기 전에 가져야 할 건 기대감보다 치사량을 넣은 국뽕과 자기최면법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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