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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 - SF에서 다큐멘터리로의 진화

애플시드 2023. 3. 25. 22:16
 
공각기동대
초고속 네트워크 사회, 점점 더 지능화되고 흉포화 해지는 범죄에 대항하기 위해 정부는 대장 쿠사나기를 필두로 비공식 사이보그 부대를 결성하여 공안 9과 ‘공각기동대’를 탄생시킨다. 어느 날, 각국의 정보망으로부터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출몰하며 주가조작, 정보조작, 정치공작, 테러 등의 죄목으로 국제수배중인 인물 통칭 ‘인형사’가 일본에 나타났다는 경고가 ‘공각기동대’로 날아든다. 쿠사나기는 정체불명의 해커 ‘인형사’를 제거하기 위해 임무에 뛰어든다.
평점
8.5 (2002.04.12 개봉)
감독
오시이 마모루
출연
타나카 아츠코, 오오츠카 아키오, 야마데라 코이치, 카유미 이에마사, 나카노 유타카, 오오키 타미오, 겐다 텟쇼, 오가와 신지, 미야모토 미츠루, 야마지 카즈히로, 치바 시게루, 야나카 히로시, 마츠오 긴조, 마츠야마 타카시, 고토 아츠시, 사카모토 마야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통하여 보듯 희미하게 보나..”
(고린도전서 13장 12절 인용)
<공각기동대>

2022년 12월 인공지능 챗봇 Chat GPT의 출현으로 본격적인 AI 충격파가 전문가의 영역을 넘어 전 세계의 대중에게 퍼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28년 전에 개봉한 SF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다시 보니 그 어느 때 봤을 때보다도 더 놀라움이 느껴진다.
이제 인류는 SF에서 F(fiction)를 빼버리든지 그 앞에 N(non)을 붙이든지 해야 할 시대를 살고 있으니 곧 28년 전 공각기동대가 던졌던 희미한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야만 할 때가 된 것이다.

인형사(코드명 프로젝트2501)

“하나의 생명체로서 정치적 망명을 희망한다..
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발생한 생명체다.”
<공각기동대>중에서 해킹프로그램 프로젝트2501(인형사)의 대사

공각기동대는 인간과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이제 와 다시 보니 그것이 핵심 주제는 아니었다.
물론 전통적으로 인간을 구별짓는다고 생각하는 고스트(자아 혹은 영혼)의 유무라던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의 논란은 있을 수 있겠으나 어디까지가 인간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일반인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 보면 어떻고 아니어도 뭐 크게 상관없다.

공각기동대의 진행 방향은 그보다는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통한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명체는 진화를 거듭하고 결국 초월적인 존재인 신(神)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는 뉴에이지 사상의 SF형 답습인 것이다.
이는 극 중 외무성 격인 공안 6과가 비밀리에 심어둔 해킹 프로그램이었던 인형사(프로젝트2501)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인공지능과 분리시키는 것에서 비롯된다.
자신은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AI는 아니다.”
<공각기동대>인형사

이런 설정에는 아마도 유명 수학자 폰 노이만이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예견한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른 특이점의 발현이 녹아 있는 듯 보이지만 그와는 미묘하게 다른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는 희미하거나 혹은 인간과 비슷하게나마 생존의 본능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자연선택과 비슷한 기계 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며 진화했을 것이고 묘하게 인간과 닮아있다.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의 의지다..
지금의 나는 죽음의 가능성도 있지만
시간은 내 편이다.
이것엔 사형제도가 없으니..”
<공각기동대>인형사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

정리해 보면 인형사는 기계 정보의 세상에서 우연히 생겨난 존재로 그 안에서 정보를 습득하며 소멸되지 않고 진화를 해온 아직은 불안한 존재다.

주인공인 쿠사나기 소령 역시 우주를 떠도는 원소들의 무작위적 조합에 의해 우연히 생겨나 진화를 거듭해오며 소멸되지 않고 생존해온 존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류의 자연적인 진화는 멈춰 버렸다. 이에 진화의 한계에 부딪힌 인간은 스스로 기술적으로 인위적인 진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 최종 단계인 초월과 불멸의 단계에 있어 필연적으로 인간은 인형사로 비유되는 완전한 기술과의 결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를 의식함과 동시에
나를 어떤 한계 안에 제약해버려.”
<공각기동대>쿠사나기 소령

재미있는 것은 공각기동대가 그런 부분들 에서 장르적으로나 주제적으로 상반되고 이질적으로 느껴질법한 성경을 차용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에 기반을 둔 책이다.
반면 공각기동대는 불완전함이 진화를 거듭해 스스로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부분에서 절대적인 하나님이 행하시는 성경의 중요 부분을 자신들의 것으로 비틀어 버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공각기동대는 충분히 영지주의적인(성경을 왜곡하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한 장면을 살펴보자면 주인공 쿠사나기의 잠수 장면은 성경의 거듭남을 의식화한 침례(물에 잠기는)를 형상화 한 것이다.
이는 물속에서 올라오는 첫 번째 태어남을 상징하는 영화의 오프닝과 가장 직접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거듭남(두번째 태어남)을 상징화 한 것이고 다시 태어남으로 인해 이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나로 변화됐음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요한에게서 받은 침례 후에 하늘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잠수에서 나온 쿠사나기 소령은 마치 하늘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인형사가 보낸 메시지를 듣는다.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요한복음 3장7절)

인형사와 쿠사나기 소령의 다이브

결국 인형사와의 만남에 성공한 쿠사나기 소령은 전투 중에 벽화로 그려진 진화의 단계를 표현한 헤켈의 생명나무의 꼭대기를 뛰어넘어 인형사와의 다이브(접속)에 성공해 마지막 최종 진화의 초월적 존재를 낳는다.
불완전한 두 존재의 만남이 비로서 삼위일체의 완전성을 갖게 된 것이다.
마침내 인간은 진화의 과정인 불완전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버리고 최종 단계인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신(god)이 되었다.

“아이 때는 말하는 것도 생각도 논리도 아이 같지만
어른이 된 후엔 아이 때의 것들을 버렸노라”
(고린도전서 13장 인용)
<공각기동대>엔딩

공격받은 헤켈의 생명나무 벽화 장면

1995년 공각기동대의 영감은 결국 불가능에서 실현 가능한 쪽으로 기울고 있는 시대인 2023년 오늘날까지 관통해 미래로 뻗어나가고 있다.  
쿠사나기 소령만큼은 아니어도 디지털 기기와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고성능 트랜스휴먼이나 인공지능 로봇의 출현은 이제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인공지능 챗봇 Chat GPT의 출현은 어쩌면 우리가 우려하거나 기대했던 미래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가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내지 설렘을 안겨주었다.
혹시 이 세대 안에서 기술의 특이점이 나타나게 될까?
그 특이점에 한계는 어디일까?
인간의 감정과 의지마저 흉내 낼 수 있을까?
결국 인형사처럼 인간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생성된 유사고스트를 만들어내고 인간을 탐내지 않을까?
그것이 인간인지 아닌지 따위의 정체성 논란은 미래에도 여전히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역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모든 곳 모든 시간대에 있어 지능이 뛰어난 놈들이 덜 뛰어난 놈들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던지 생명이던지 정체성이라든지 자아가 됐던지 고스트가 됐던지 무엇이 됐던지 단어의 정의는 지능이 더 뛰어난 존재가 정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공각기동대는 1995년의 SF에서 2023년의 과학 다큐멘터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1995년 공각기동대가 보류했던 증명할수 없는 생명체 문제를 제기한 인형사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어쩌면 인류가 영원히 원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들이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터이나 쇠와 진흙이 섞이지 아니함같이 그들이 서로에게 달라붙지 못하리이다.”
다니엘서 2장 4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