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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영화 ‘테넷(Tenet, 2020)’ - 친절한 테넷씨

애플시드 2025. 3. 31. 15:53
테넷
인버전 : 시간(엔트로피)을 거꾸로 돌리는 기술
엔트로피 : 물질의 무질서도를 말하며 시간에 비례한다.(열역학 제 2 법칙)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느껴.

영화를 보다 보니 영화 초반에 저 대사를 삽입한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지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자신들도 모르는 거죠.
그냥 그럴듯하게 영화의 앞뒤를 갖다 맞췄지만 사실 모순 그 자체라 설명이 불가능한 영역이에요.

그래서 그냥 느끼라는 거예요.

다들 이 영화는 불친절하다고 말해요.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나 장치를 생략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건 다 이유가 있어요.
위에 이야기했다시피 자신들 조차도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못 하고 있는 걸 어떻게 관객에게 설명을 하겠어요.

하지만 걱정 없어요.
왜냐하면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네임밸류가 들어갔기 때문이죠.

뭔가 있어 보이거든요.

아인슈타인이 1+1이 사실은 2가 아니라 3.765489라고 말한다면 뭔가 있어 보이잖아요.
이번 영화는 그런면에서 놀란이 관객의 지적 허영심을 가지고 노는 영화예요.

1+1 = 3.765489를 알아내기 위해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인슈타인의 웃음과도 같죠.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그 값을 찾아내기 위해 별별 괴변이 다 쏟아져 나오겠죠.
그리고 결국에는 당연한 클리셰가 등장하죠.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머~~언 훗날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멘"

이런 모순적인 내용을 시나리오로 작성하다 보면 절대 뚫을 수 없는 막히는 구간이 나와요.

20년간 구상해도 달라질 건 없어요.

그래서 이 막힌 구간을 뚫어낸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딱 그 지점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논리는 포기하고 무시해야 해요.

테넷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그냥 느끼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점에서 이 영화만큼 친절한 영화도 없어요.
관객에게 먼저 영화의 관람법을 알려주고 시작하니까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사실 테넷의 결과는 이미 나와있었어요.

자신들이 현재에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과거로 돌아와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미래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죠.(미래가 존재한다는것 자체도 마찬가지로 증거가 돼요)
왜냐하면 미래의 계획이라는 게 일부의 인버전이 아닌 알고리듬의 폭발로 인한 전 세계적인 인버전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이 영화는 왜 미래의 계획이 실패했나를 보여주는 과거 회상을 다룬 영화예요.

하지만 여기서 뚫을 수 없는 모순이 생겨요.

이 계획은 실패했지만 그 계획을 실행하는 미래는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죠.
빌런 사토르는 현재에 죽었는데 미래에는 살아있어야 해요.
그렇다면 이 지점을 해결하기 위해 결국 두 개의 시간이 생겨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모든 시간의 역설을 설명하는 결과물은 다중우주(평행우주)라는 결론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다중우주(평행우주) 론은 만병통치약이에요.
왜냐하면 다중우주에서 불가능한 건 없거든요.
SF계는 물론 과학계에서도 다중우주론은 절대적 신앙이에요.

물론 전 믿지 않아요.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과정이에요.

내가 왜 여기서 키보드를 두드리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보면 돼요.
사실 이건 하나도 새로울 게 없어요.
수많은 영화에서 사용되는 시퀀스죠.
일단 한 장면을 보여주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에 대해 과거로부터 차츰 아다리를 맞춰가는 것.
그렇게 아다리가 맞아가는 게 영화적인 재미를 주는 거죠.

두 번째는 같지만 다른 이유예요.
아다리를 맞추는데 그 주체가 미래에서 온 자신이라는 거죠.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 1984)’식 화법이에요.

물론 논리적인 답은 없어요.

위에 말했다시피 그냥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간대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거죠.

하지만 터미네이터는 미래의 자신이 과거의 어머니와 섹스를 해서 자기를 낳는다는 모순적인 내용임에도 아무도 그에 대해서 문제 삼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영화가 존나 긴장감 쩔거든요.

하지만 테넷은 자꾸 엔트로피같은 과학적 용어로 관객의 지적 허영심을 찔러대는 영화라 거기에 넘어가서 상황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면 뇌의 과부하로 제대로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전 최대한 느끼려고만 했어요.
극장에서는 대형화면이 주는 시각적인 어드벤티지를 최대한 챙기는게 좋죠.
그 외의 것은 추후 OTT서비스로 충당해도 되는 부분이예요.

생각해보니 이런 시간의 역설을 다룬 영화 중에 자꾸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되먹지 않은 영화가 또 있어요.
바로 에단 호크 주연의 ‘타임 패러독스(Predestination, 2014)’죠

빌런 사토르(오른쪽)와 그의 아내 캣(왼)

넷플릭스에 적응하다보니 영화관에서 2시간 30분을 가만히 앉아서 스크린을 쳐다보는 게 버거워졌어요.

중간에 끊었다가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커피를 타오고 놓친 장면을 다시 돌려볼 수도 없는데 자꾸만 손가락으로 포즈(pause)버튼을 누르는 상상을 하게 돼요.

그러면서 이제 극장 문화는 확실히 급속도로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끝으로 영화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과 좋았던 점을 한가지씩 꼽아보자면
당연히 개취지만 먼저 여 배우가 별로 마음에 안들었어요.

항상 예쁜 여배우의 출연 여부가 개인적으로 영화의 재미와 몰입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안임을 감안하면 그부분에서 다소 아쉬움이 느껴졌어요.

가장 좋았던 점은 역시 CGV 콤보였어요.
영화를 관람한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도 하죠.
따라서 저 개인적으로는 목적에 따른 매우 만족스러운 영화였어요.

저한테 영화 속의 인버전 능력이 있다면 이 부분에 적용시켜서 15분 남짓만에 비워진 CGV 콤보 팝콘을 인버전 시켜 채워서 또 먹고 싶었어요.

저명한 과학자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면
그건 여전히 말도 안되는 소리다.
(존 레녹스(수학자)
이론 물리학자 미치 카쿠